인도,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핵손해배상법 완화 추진

서론: 인도 에너지 정책의 중대 전환점

2025년 4월, 인도 정부가 외국 원전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자국의 핵손해배상법 완화 추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인도의 장기적인 에너지 전략과 외교 정책, 그리고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정책 변화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해당 법 개정의 배경과 그 의도, 외국 기업들이 우려해온 기존 법의 문제점, 개정이 가져올 긍정적/부정적 효과, 그리고 인도 내 정치적·사회적 함의를 전방위적으로 분석한다.

인도 핵손해배상법 완화 추진은 외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1. 인도 핵손해배상법(CLNDA)의 배경

인도는 2010년, ‘민사적 핵손해배상법(Civil Liability for Nuclear Damage Act, 이하 CLNDA)’을 제정했다. 이 법은 1984년 보팔 가스참사에서 비롯된 ‘산업 재해에 대한 무제한 책임’ 원칙을 반영하여 만들어졌으며, 원전 운영자뿐 아니라 부품 공급자에게도 강한 책임을 부과했다.

<보팔 가스참사>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미국계 유니언 카바이드 농약 공장에서 발생한 메틸이소시아네이트(MIC) 가스 누출 사고로, 약 3,000명이 즉사하고 수십만 명이 건강 피해를 입은 세계 최악의 산업 재해 중 하나이다. 노후된 설비와 안전관리 부실이 원인이며, 이후 수만 명이 장기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고통받았다. 이 사건은 인도 정부가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2010년 제정된 ‘민사적 핵손해배상법(CLNDA)’의 배경이 되었다.

이 법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중 책임 구조: 원전 사고 발생 시 운영자가 1차 책임을 지며, 공급자에게도 일정 책임을 청구할 수 있음.
  • 공급자 책임 범위 명확하지 않음: 공급자는 계약 가치 이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음.
  • 무제한 기간 청구 가능: 사고 발생 수십 년 후에도 법적 책임이 제기될 수 있음.

이러한 조항은 국제 기준보다 훨씬 엄격하여, GE, 웨스팅하우스 등 주요 외국 원전 기업들이 인도 진출을 꺼리는 이유가 되어왔다.


2. 인도 정부의 개정 추진 배경

현재 인도 정부는 자국의 원전 확대 계획을 위해 해외 기술과 자본 유치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번 개정 움직임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① 에너지 믹스의 다양화 필요

인도는 2070년 탄소중립(Net Zero) 목표를 선언한 상태로, 석탄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 태양광, 풍력 등 다양한 에너지원 확대가 시급하다. 하지만 원전 확대는 외국 기술 의존도가 높으며, 기존 법 체계는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2025년 기준 인도의 에너지 믹스는 여전히 석탄 중심이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체 발전설비 용량 약 470GW 중 석탄, 가스, 디젤 등 화석연료 기반이 약 52.6%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47.4%는 태양광(약 102.6GW), 풍력(약 48.6GW), 수력(약 47GW), 원자력(약 8GW) 등 비화석연료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500GW까지 확대하고,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비화석원에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② 미국 및 프랑스 기업들과의 협력 추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의 EDF 등은 이미 인도 원전 프로젝트와 관련된 MOU를 체결했으나, CLNDA의 공급자 책임 조항으로 인해 실제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이번 개정은 이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③ 인프라 투자 유치 경쟁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서 에너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인도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 유치하여 전략적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3. 개정 방향: 국제 기준에 맞춘 책임 제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인도는 다음과 같은 개정을 검토 중이다:

  • 공급자 책임 한도 설정: 계약금액 또는 명확한 금액 한도로 제한
  • 책임 기간 제한: 사고 발생 후 일정 기간(예: 10년) 내에만 손해배상 청구 가능
  • 기금화 방안 검토: 사고 시 보상을 위한 핵손해배상기금 조성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안이나 ‘CSC(핵손해배상에 관한 보충 협약)’의 표준과 유사한 방향이다.


4. 기대효과

① 외국 원전 기업 투자 유치

웨스팅하우스, EDF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는 기술이전 및 고용 창출, 국산화 촉진 효과를 동반할 것이다.

② 원전 프로젝트 재개

현재까지 표류하던 자이탑푸르, 코발람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다시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총 30GW 이상 원전 확대 목표를 가진 인도 정부에게는 실질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

③ 탄소배출 감축 가속화

화석연료 비중이 70% 이상인 인도 전력 구조에서, 원전은 안정적인 베이스로드 전원으로 기후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


5. 우려와 논쟁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번 개정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① 피해자 보호 약화 우려

보팔 가스 참사 이후 생긴 ‘무한 책임’ 원칙을 약화시키는 이번 개정은, 인도 내 인권 단체 및 피해자 지원 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기업 책임을 줄이는 대신, 사고 발생 시 국민은 누가 보호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② 정치적 반발

야당은 정부의 입장을 ‘외국 기업에 굴복하는 행위’로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국민 여론을 의식한 정치 공세가 펼쳐질 수 있다.

③ 보험 및 보상 구조의 불완전성

인도 내 민간 보험사가 대규모 원전 사고에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정부 주도의 재보험 체계 구축 없이는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어려울 수 있다.


6. 국제적 함의

이번 개정은 단순히 국내 투자 환경 개선을 넘어서, 국제 핵 협력 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미국-인도 핵협력 강화: 2008년 체결된 민간 핵협정 이후 제도적 장애물이 사라질 경우, 양국 협력이 가속화될 것이다.
  • 프랑스, 일본 등 우호국 진출 확대: 안전성 높은 원전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이 인도에 적극 진출할 수 있다.
  • 중국과의 경쟁: 인도는 자국 기술로 독자 원전을 개발하는 중국과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 외국 기술 유입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론: 규제 완화와 사회적 신뢰의 균형이 관건

인도의 이번 핵손해배상법 완화 움직임은, 에너지 자립과 외교 전략, 투자 유치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 과감한 시도이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 피해자 보호, 기업 책임이라는 요소와의 균형 없이 일방적 규제 완화가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사회적 저항과 정치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단순한 법 조항 변경을 넘어, 사고 발생 시 국민이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병행 구축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제 투자자와 자국민 모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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